* 2019. 5. 6 <학교의 시계가 멈춰도 아이들은 자란다> 꽃친동네 북토크쇼에서 나눈 5분 스피치 내용을 옮겨옵니다. (마치고 보니 10분을 넘겼다는 건 안 비밀;;;;)
방학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
볼만한 방학드라마 괜찮은 결말 그거면 됐다 널 사랑했다
나 살아가면서 가끔씩 떠오를 기억 그 안에 쉼이 있다면 그거면 충분해
우린 잠자느라 허리도 아파봤고 우습게 교복 입은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했어
미친 듯이 놀았고 우리 이 정도면 진짜 방학다웠어
갈비뼈 사이사이가 찌릿찌릿한 느낌 나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눈빛
쉼으로 참 많이도 배웠다 반쪽을 채웠다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를 꽃친 버전으로 살짝 개사해보았습니다. <학교의 시계가...>를 가장 짧게 요약한다면 꽃친이 쓰고 있는 방학 드라마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긴 휴식이 필요하다!" 누가 말했을까요? 꽃친을 만든 대표가? 아니구요, 꽃치너 1기 강은이가 지원서에 꽃친을 선택한 이유로 써 낸 말입니다. 이렇게 꽃친스런 명언이 어디있겠습니까? 꽃친 띵언 제1호입니다. 꽃친은 학교가 아니라 방학입니다. 꽃친은 강은이가 말한 ‘긴 휴식’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안학교 교장이 아닙니다. 학교와 딱 반대되는 일을 합니다. 1년에 한번씩 방학이라는 멍석을 까는 사람입니다. 깔아놓으니 주섬주섬 아이들이 모여듭니다. 그 멍석 위에서 아이들이 놉니다. '뭘 좀 뽀대나게 가르쳐야하지 않나?' 제가 부모이고 어른이다보니 솔직히 조바심이 날 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염려와 상관없이 방학이라는 시간이 일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요.
꽃친의 방학 드라마에는 꽃친의 겉모습과 속살이 함께 버무려져 있는데요. 먼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볼까요. 책에서 보셨겠지만, 주2회 아이들의 모임은 꽤 알차고 심심찮게 꾸려가고 있습니다. 심심할만하면 한강공원에 나가 농구도 하고, 가까운 대학 학생식당에 가서 밥도 사먹고요. 내일은 서대문형무소 탐방 후 산을 넘어 저희 집에 와서 밥해먹으려고 합니다. 꽃친 모임은 방학을 방학답게 지속하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열일곱살 아이들에겐 친구가 필요하고 재미있는 일이 필요하거든요. 암튼 이틀은 신촌에 있는 꽃친 놀이터에 모여 친구들과 뭔가 하면서 지냅니다.
이제 속살을 소개합니다. 남은 5일간 대부분 아이들은 집에서 방바닥 긁습니다. 이게 바로 방학의 민낯이죠. 이런 아이를 보면서 불안과 분노 게이지가 최고조로 올라갈 수 있으니 심신이 미약하신 부모님들은 유의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불안, 그 빡침에도 불구하고 1년의 방학을 지속할 때 어떤 화학작용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관찰한 것은 제가 서문에 살짝 흘린 내용이기도 한데요. ‘달달한 과자를 원한 아이에게 영양가 있는 과일과 우유가 주어졌다’ 달달한 과자는 저희 가정의 경우에는 딸의 적성발견, 명확한 진로였는데, 안식년 보낸 후에도 진로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답니다. 그러니까 과자 맛 못 본거죠. 그런데 EBS 기자님이 진로를 찾았냐고 묻는 인터뷰에 당시 고3이던 딸 은율이는 ‘남과 다른 선택을 해보았으니 앞으로 대담하게 도전할 수 있을거 같아요’라는 동문서답을 했어요. 하지만 곱씹을수록 우문현답이더군요. 용기, 도전정신은 인생을 살아가는 기본 근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걸 만든 시간이 아니었나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양가있는 과일과 우유를 섭취한 것 같다고 쓴 거죠.
이후 꽃친을 시작하고 올해로 4년째 관찰하고 있는 것들은 이런 류의 화학작용입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전한다면 ‘내가 이런 사람인 줄 이제 알았다, 인간관계의 만렙을 찍었다 등등이 있구요. ’1년동안 우리 가족이 가장 변화된 점은?‘이라는 설문에 참여한 부모님들 답 중 가장 많이 나온 것은 ‘부모가 불안을 이기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의연하게 아이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입니다. 작년에 나온 꽃친 연구보고서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런 변화가 꽃친이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좋아서 생긴 것일까요? 아니면 선생님들이 훌륭해서? 물론 다 맞지요!^^ 우리 길잡이샘, 동행샘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일하는지 몰라요. 아이들의 마음을 살필 줄 알고 한명 한명에 눈 맞춰주는 분들입니다. 아는 분들은 다 알지요. 그런데, 여기에 더할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방학이라는 시간 자체입니다. 방학이 일합니다. 쉼과 여유가 알아서 일합니다. 꽃친 시작을 함께 했던 길잡이 샘 표현을 따오면 이 부분이 바로 샘들이 ‘계획하지 않은 커리큘럼’입니다.
조금 더 설명드리자면 방학이 하는 일은 존재와 존재가 만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시험과 과제, 스트레스가 없는 휴식 시간이라서 가능합니다. 방학은 '숨겨져 있던 진짜 나'와 만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나와 내 친구가 투명하게 만나도록, 나와 부모가 진심으로 만날 수 있도록 방학이라는 여백이 열일합니다. 늘 그런 만남이 이뤄진다고 말씀드리면 거짓말이구요. 아주 '잠깐씩' '가끔' 나타납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빛나는 순간이지요. 공저자인 정신실님이 책에서 쓴 이야기를 빌자면, 왕따의 상처가 평생 가는 것처럼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경험도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평생 영향력이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씨앗에 비유합니다. 그 반짝했던 찰나가 씨앗으로 심겨지는 거죠. 그 씨앗은 서서히 싹을 틔우고 결국은 열매를 맺어갈 것입니다.
요며칠 장안의 화제가 된 글귀가 있어요. 김혜자씨가 수상소감으로 준비해서 읽어준 드라마마지막 대목.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눈이 부신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과감하게 여백을 택한 꽃치너들에게 응원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들, 앞으로 잘 살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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