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있는 청소년 갭이어 [꽃다운친구들]

꽃다운친구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1년의 갭이어를 선택한 청소년과 그 가족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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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친 칼럼

[꽃친칼럼] 화려한 성과보다 값진 스스로 얻는 작은 깨달음

happyyeji 2020. 12. 31. 12:33

 

청소년 갭이어 꽃다운친구들은 매년 12월 말,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인 ‘안녕식’을 엽니다. ‘안녕식’의 안녕은 한 해 동안 함께 지낸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안녕, 다가올 미래에게 만남의 인사를 건네는 안녕,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평안을 비는 안녕이지요. 

꽃친의 안녕식은 말하자면 학교의 졸업식과 비슷합니다. 여러분은 졸업식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꽃다발을 받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이별의 선물을 건네는 일 등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졸업식 행사 자체는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경험한 것들, 이룬 것들,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지 않아서일까요? 

꽃친의 안녕식은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이야기가 전달되는 시간입니다. 아이들의 1년, 아이들의 변화, 아이들의 고백이 주인공입니다. 

물론 꽃친도 처음에 안녕식을 준비할 때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명실공히 1년을 마무리하는 자리이고 가족들을 모두 초청하는 공식적인 자리인데 뭔가 그럴듯한 것, 보는 사람들이 와~ 정말 대단한데?라고 감탄할 만한 것들을 선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단단히 준비시켜야 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밖에 만나지 않는 느슨한 공동체인 꽃친에서 이런 것들을 준비하려면.. 음.. 아마 평소랑 다르게 일주일 합숙 훈련 정도는 해야 되겠지요? 하지만 이게 과연 '쉬어 가도 괜찮'다는 꽃친의 스피릿에 부합하는 일일까요? 

그래서 저희들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안녕식 당일에 보여주는 콘텐츠들의 수준을 보장할 수 없을지라도 정말 아이들이 느낀 것들을 진솔하게 펼쳐 놓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자신이 1년 동안 경험하고, 씨름하고, 배우고 느낀 것들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자. 꽃친이 1년 동안 늘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예상대로 들쭉날쭉이었습니다. 물론 멋지게 잘 마친 친구들도 있지만 2/3쯤 만들다 만 영상, 대본을 다 외우지 못한 콩트, 3번쯤 다시 시작해야 하는 밴드 합주, 종이에 고개를 푹 처박고 어색하게 소감문 읽기 등은 예삿일이었지요. 만약 이게 공연이고 가족들이 관객이라면 이런 안녕식은 매우 실망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관점을 다르게 가지면 아이들의 어설픈 결과물은 놀라운 성장입니다. 아마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뗀 최초의 한 발자국일테니까요.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조절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꽃친 모임에도 늦기 일쑤였지만 어물쩍 넘어가거나 오히려 늦든 말든 뭔 상관이냐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죠. 따뜻하고 정도 많은 친구지만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굴기 일쑤였거든요. 이 친구는 결국 안녕식 준비시간에도 늦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마음이 상해서 자칫 마지막 날 어색한 이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전은 소감 발표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나는 지각을 잘 합니다. 꽃친을 하는 동안 약속 시간에 늦는 일이 많아서 친구들에게 많은 피해를 줬습니다. 그게 미안합니다. 나의 이런 모습은 정말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나는 이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동안 나를 참아주고 도와준 친구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1년 내내 부모님과 갈등을 겪은 친구가 엄마아빠와 함께 감사패를 받는 순간 말없이 흘린 눈물.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른 모든 일에는 냉소적이지만 노래에만큼은 진심인 친구가 준비한 무대의 선곡은 10년 청소년의 행사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였지만 사실 무슨 노래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16, 17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할까요? 그 마음을 충분히 들여다 보고 씨름하고 다독이고 잘 데리고 다음 걸음을 옮기는 것이 청소년기에 정말로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그 과정을 누구보다 열심히 해내고 있는 친구들에게 어른들 기준에 맞춘 화려한 성과를 요구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안녕식 순서들 사이에 펑크가 날까 봐, 아이들이 준비한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의미 없이 실망스럽게 끝날까 봐 조마조마하지 않습니다. 어설픔 속에서 이번엔 또 어떤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가 됩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스스로 얻는 작은 깨달음들과 기어이 자신의 힘으로 씨앗 껍질을 뚫고 나가는 그 생명력을 자꾸자꾸 보고 싶습니다. 

 

- 꽃친쌤 이예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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