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있는 청소년 갭이어 [꽃다운친구들]

꽃다운친구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 1년의 갭이어를 선택한 청소년과 그 가족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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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친 생활

세월호에 한 발자국 다가간 시간(꽃다운친구들의 소감문)

꽃다운친구들 2016. 5. 31. 11:07

2년전 침몰한 세월호 선체인양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수심44미터 아래, 선체폭의 두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깊이에 가라앉은 세월호가 다시 뭍으로 나오기 위해 앞으로 좋은 날씨의 도움이 꼭 필요하답니다. 물론, 정부당국의 적극적 협조도요. 7월로 예정된 인양이 순조롭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요즘은 길에서 세월호 기억리본을 단 가방을 많이 보게 되어 참 반갑습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그 작은 리본 하나를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고 하지요.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내신다고요.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꽃친들이 했던 몸짓, '단체 피케팅' 후 꽃친들이 직접 기록한 소감문 일부를 옮겨옵니다. (피케팅후기 http://kochin.tistory.com/48)

* 꽃다운 친구들은 함께 모여서 한 공동활동과 소감, 그리고 개인적으로 보내는 시간 등 1년의 방학생활을 각자의 일기장에 꾸준히 기록해오고 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초등학교 시절 이후 일기와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터라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는 면이 없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진솔하고 편안하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피케팅 소감문>

“첫 피케팅은 나에게 슬픔도 줬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사실들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읽어보고 가셨다. 읽어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솔직히 나도 시간이 지나면 관심도 줄어들까 걱정된다. 하지만 계속 내가 관심을 갖고 지켜봤으면 좋겠다.” 

“언니는 수학여행을 안 가려고 했는데 자신이 보내서 죽은 것 같다고 얘기 하시는데 정말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늠이 안 된다. ‘침몰 후 첫째 날에는 다들 내 자식 살려달라고 했는데, 셋째날쯤 되니까 찾아만 달라고 하더라고...’라고 하시는데 진짜 슬프고 화났다. 빨리 구조할 수도 있었을텐데 뭘 한 건가 싶고, 또 수습 그만두게 하려고 협박을 많이 했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는 빡쳤다. 아직도 힘드시다고 하시는데, 평생 힘드실 수도 있을텐데 정말 슬펐다. 이번에 인양하는데 다윤 언니를 꼭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어머님도 다른 유가족 분들도 건강도 회복하시고 다시 행복해지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벌써 세월호 2주기가 지났다. 2년 전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 전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세월호는 마치 한 달 전 같이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솔직히 말하면 세월호에 대해 나는 덤덤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있고, 노란리본은 누군가의 시선을 바라며 달고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다윤 언니 어머니를 만나고 피케팅을 하면서 세월호와 그 가족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간 것 같다. 그저 관심을 가지는 것 이상으로 세월호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독서모임에서도 세월호 관련된 책인 <다시 봄이 올 거예요>라는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세월호에 탔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분들이 세월호 ‘생존자’ ‘희생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들,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로 다가와서 더 마음이 아팠다....세월호 너무 마음 아프고 화가 나지만 그렇게 피케팅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지 않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쳐다봐주고 리본을 받아주는 사람들이 그 순간만큼은 세월호를 기억하듯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다윤 언니 어머니가 세월호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렇게 많이 슬퍼하시는구나. 마음이 너무 아팠다. 부모님, 가족들에게 평소에 사랑한다고 많이 얘기하고 많이 안아주라고 하셨다. 그 말을 자꾸 하시는데, 하실 때마다 울컥했다. 엄마한테 내가 먼저 다가가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정말 별로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의 표정이 진짜 별로였다. 물론 리본도 가져가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도 계셨지만 욕도 먹었다. 그나마 내가 들어서 다행이지 유가족분들이나 미수습자 가족 분들이 들었으면 정말... 피케팅을 하면서 세월호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많다는 걸 짧은 시간에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픈 시간이었다. 피케팅 후에는 다윤 언니 어머님을 뵙고 몰랐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도움될 만한 일이 없다는 게 너무 싫었다. 애초에 그 일은 일어나면 안됐었고 일어났을 때 빠른 대처를 했어야 했고 일이 커지는 걸 막았어야 했는데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 힘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언니오빠들, 어린아이, 어른들이 그렇게 억울하게 떠나신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미수습자 아홉 분이 빨리 돌아오셔서 가족들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셨으면 좋겠다.” 

“다윤 언니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다윤 언니의 언니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자리에 엄마와 딸 두 명이 앉아있었고 언니가 동생에게 잔소리를 했는데 그게 너무 부럽다고,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웠다는 말이 너무 슬펐다. 가족 분들은 얼마나 슬프고 힘드실까? 내가 한 피케팅이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떤 말로 위로해드릴 수 있을까? 어떤 말로 그분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그 일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더 많이 알아서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진실이 알려지기를, 그래서 가족 분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지기를 위하는 것일 뿐이다.”